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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eun's Blog
평행과 역설 사이 어디쯤



일하다가 밥 때가 지나서 먹으러 나가는 길이었는데요.
두어 번 마주쳤던 길냥이가 황급히 제 쪽으로 오고 있었어요.
평소 낯가림이 심하지 않은 녀석이라 반가워서 "야옹~" 했는데 엄청 놀라 휘청거리면서 몸을 벽에 부딪는 거 아니겠어요.  


자세히 살펴보니 한 쪽 눈동자가 성하지 않았고 입에는 온통 피가, 몸도 다리도 심하게 절고 있었어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숨을 몰아쉬면서 쇳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고요. 
길냥이가 영역다툼을 그렇게 심하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가만히 두면 죽어버릴 것 같더라고요. 
입에 피가 묻은 걸 보면 사고나 사람이 해코지한 것은 아닌 듯하고,  


여튼 저는 얼른 몸을 낮추고 손을 내밀어 친근감을 표시하면서 돕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어요.
잠시 어쩔까 고민하던 녀석은 얼른 몸을 돌려 가버리더군요.
 
끔찍한 모습은 둘째 치고, 눈에 맴돌던 살기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라버렸어요.  
도저히 밥을 못 먹겠어서 잠시 걷다가 들어왔는데, 담벼락 아래에 녀석이 웅크리고 있더군요.
꼼짝도 않고,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요. 

그래서 얼른 그릇에다 미지근한 물을 담아 근처에 두고, 근처 동물병원이 있나 생각하면서 사료 얻을 곳이라도 찾고 있었어요. 
다시 나가 보니 물을 먹은 흔적도 없고 사라졌네요. 


사실 병원에 데리고 갈 수도, 사람이 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해요. 
그냥 너무 놀라고 잘 진정이 안 되어서 주저리주저리 써봅니다.  
여기는 홍대역 근처 주택가에요.
 
인문 출판의 위기? 우리는 돌파한다
좀더 고민이 필요할 뿐, 널리 유포되고 있는 출판의 위기에 관한 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열정적인 출판인들을 만났다. 소신 있는 기획으로 유명한 이들이 내놓은 해법은 무엇일까.
[19호] 2008년 01월 21일 (월) 13:02:20 노순동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출판계 불황’이라는 말은 해마다 반복된다. 상투적 뉴스에 가깝다. 그 중에서도 ‘출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인문·학술 출판은 역설적으로 위기라는 말이 더 자주 들려온다. 해마다 꾸준히 인문·학술 서적 20여 종 안팎을 출판하는 4개 출판사 대표와 기획자가 모였다. <인물과 사상> 시리즈를 펴낸 바 있는 개마고원은 그동안 고종석·손석춘·강준만 등 비판적 지식인의 책을 펴냈다. 그린비는 연구 공동체 ‘수유+너머’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인문·철학 서적을 주로 출간한다. 도서출판 길은 묵직한 학술서적을 주로 펴내왔고, 이매진은 정치학자 손호철 교수의 책과 젊은 연구자들의 ‘젊은 인문서’를 출간하고 있다. 각 출판사의 올해 출간 방향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 출판사별로 올해 출간 방향이나 계획이 어떻습니까?


   
 
ⓒ시사IN 한향란
유재건 (그린비 대표)  “출판이 만약 어렵다면, 돌파할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문·사회과학 출판도 오디오북이나, e-러닝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콘텐츠 자체의 쇄신도 필요하지만 미디어적 관점에서 고민을 병행해야 한다.”
 
 
유재건 (그린비 대표) : 인문 출판이 힘을 발휘하려면 종수가 늘어야 한다. 인문서의 판매 부수가 2000~3000부 수준이라고 볼 때, 매출을 높이려면 종수를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린비는 올해 34종을 출간하고, 향후 2~3년 안에 한 해 50종 정도 내는 출판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주마다 한 권씩 책을 펴내 단행본의 깊이를 갖되 현실 문제에 답하는 순발력을 발휘하고 싶다. 올해 출간의 주요 방향은 ‘근대’이다. 근대는 어떻게 생겨났고, 근대를 넘어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근대의 원점부터 비판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현안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은 인문 출판이 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대신 저변에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싶다.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 우리 출판사가 생긴 지 5년 정도 되었다. 지난해 19종을 냈고, 올해 40~50종 정도 출간할 계획이다. 현재 기획된 책이 200종쯤 되는데, 올해부터 본격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출판사의 색깔을 확실히 드러낼 책들을 내고 싶다. 중역을 하지 않고, 전공자에 의한, 주해가 충실한 엄밀한 결정판본을 내자는 생각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독일어 원전 번역본이나 동서양 고전을 집중해서 번역 출판할 계획이다.

장의덕 (개마고원 대표) : 두 출판사는 모색기를 거쳐 자기 색깔을 확실히 잡은 것 같다. 개마고원은 <인물과 사상> 이후 몇 년 동안 방향을 잃었다. 그동안 국내 기획서 중심으로, 학술서보다는 사회과학적 문제의식을 대중적으로 접근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쉽지 않았다. 독자 대상에 관한 고민이 크다.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은 ‘이제 대학생은 독자층에서 사라진 것 아닌가’ 걱정한다. 대학생 개인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가 있다. ‘인문적 소양이 먹고사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사회가 강요하는 형국이다. 개마고원의 주 독자층은 386세대(30대 후반, 40대 초반)이다. 그런데 눈높이를 386으로만 잡아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이제는 ‘10대 좌파’를 발굴하는 기획을 중심에 두고 있다(좌파가 별건가?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말하는 거다). 10대들이 사회에 대해 진취적이고, 진보적 의식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준비 중이다. 20종 내외를 펴낼 계획이다.

정철수 (이매진 대표) : 2004년부터 시작한 젊은 출판사로 그동안 60종을 냈다. 작은 출판사가 생존을 해야 하니까, 종수는 20~25종으로 늘릴 것이다. 학술출판 종수를 늘리거나 동서양 고전에 천착하는 방식은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그런 책을 내는 출판사가 있기 때문에. 인문·사회과학 출판의 틈새를 찾아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게 목표다. 20대 후반, 30대 초반 젊은 연구자들을 신진 필자로 키우는 전략을 택했다. 석사 학위자를 포함해 필자를 발굴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유재건 : 4개 출판사가 차이가 많다. 경쟁하지 않아서 좋다(일동 웃음).

- 각 출판사가 종수를 늘리려는 경향이 눈에 띈다. 그런데 인문·사회과학 출판이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유재건 : 인문·사회과학 출판이 힘들다고 하는데…아니다, 저는 어렵지 않다. 다만 위기론 같은 담론이 유포되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일동 웃음). 판매 부수 때문인지, 종수가 적어서 어려운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린비에서는 인문학 서적이 1000부 정도 팔려도 출판사 운영이 되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 출판이 만약 어렵다면, 돌파할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문·사회과학 출판도 오디오북이나, e-러닝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콘텐츠 자체의 쇄신도 필요하지만 전달 방식 등 미디어적 관점에서 고민을 병행해야 한다. 미디어적 실험이 함께 가야, 인문학 출판의 희망을 말할 수 있다.
그린비에서는 연구자를 모시고 내부 강의를 많이 한다. 그거를 전부 녹음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독자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4~5년 후에 ‘원 소스 멀티 유스’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사IN 한향란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인문서는 그 책의 주제를 전공한 전공자가 번역하는 출판 문화가 필요하다. 비전공자가 번역을 하는 경우, 번역이 엄밀하지 못하고 황당한 오역이 생긴다. 출판 편집자나 기획자가 번역자를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승우
: 13년째 출판계에 몸담고 있는데, 우리 출판사는 완전히 복고주의다(일동 웃음). 한국 출판이 100년이 되었는데도, 정통·정도·중심을 잡아주는 출판사가 없다. 별처럼 빛나는 출판사들이 경영 세습 등 변화를 겪으면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우리 출판사는 책 출간 여부를 결정할 때 몇 부 팔릴까 생각 안 한다. 품질이 보장된다면 출간한다. 400~500부만 팔려도 낸다. 책만 잘 만들면, 진정한 독자는 본다.

장의덕 : 두 사람과 조금 의견이 다르다. ‘좋은 책을 내면 독자는 본다’는 말은 말문을 막아버리게 만든다. 책이 안 나갔을 경우에 할 말이 없게 되는 거다. 개마고원처럼 인문 대중서를 펴는 출판사로서는 부수에 대한 고민 없이 책을 출간할 수 없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인문·사회과학 책 가운데 재판을 찍는 비율이 떨어지고 있다. 심각한 수준이다. 게다가 초판 부수도 적다. 이전에 3000부 초판을 찍다가 지금은 1500~2000부 발간한다. 대중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데 실패하는 것이 기획력의 부족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답답함이 있다. 책 읽는 풍토의 문제인지, 교육제도의 문제까지 거론해야 할지… 해답이 잘 안 보여 답답하다.

정철수 : 이매진의 주 독자층도 개마고원과 비슷하다. 인문 출판의 위기가 매출의 감소도 있지만 책 만드는 사람들의 문제도 있다. 젊은 층이 독자층에서 사라지고, 더불어 편집자도 그 세대에서 배출되지 않고 있다. 현재 외국에서 나오는 최신 이론을 소화할 만한 젊은 편집자가 없다. 그렇게 되면 교정이나 교열도 불가능하다. 30대 중반인 우리 세대가 50대까지 현역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출판 동료들과 말을 나눈 적이 있다(웃음). 이렇게 되면 ‘1인 출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스러울 지경이다.

유재건 : 한국에서 인문·사회과학 출판은 새로움과 독창성으로 발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자본론>을 독일어 원전 번역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한국 사회에 그런 새로움이 필요한 시기다.
독자를 키워내야 한다. 인문 출판이 살아남으려면 판을 키워야 한다. 고용을 창출하고, 우수한 인재들이 인문 출판을 하겠다고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경영을 합리화하고, 규모를 일정 정도 늘려야 한다.
지금 상태에서는 초판 2000부만 팔리는 것을 전제로 사업 모델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자기 일관성을 가지고 시장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다. 보이지도 않는 시장성을 생각하면 답이 없다. 우리 출판계의 실력이라면 독자 2000명은 포착할 수 있다. 충성 독자를 500명, 확산 독자를 3000명 잡고서 사업모델을 잡는 것을 고민한다.

- 2007년 인문·사회과학 출판에서 주목할 만한 화두나 출판사가 있었다면?

   
 
ⓒ시사IN 한향란
장의덕 (개마고원 대표)  “인문·사회과학 책 가운데 재판을 찍는 비율이 떨어지고 있다. 심각한 수준이다. 대중에게 다가가는 데 실패하는 것이 기획력의 부족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답답함이 있다.”
 
 
장의덕
: 지난해 한국의 사회과학 출판사 체면은 후마니타스가 다 세웠다고 본다. 후마니타스가 없었다면, 한국 사회과학 출판은 정말 ‘쪽팔렸겠다’. <법률사무소 김앤장> 같은 책은 현실 밀착적이다. 이런 책이 나온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또 <88만원 세대>는 중학생, 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쉽게 쓰였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내용의 함의가 깊다.

유재건 : 강명관 교수가 쓴 <조선의 책벌레들>이 인상적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지식 생산과 수용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지난해 학술서 4권을 냈는데, 그 책을 다 읽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좋은 책은 찾아 읽게 하고, 독자가 지식의 세계에 한껏 욕심을 내게 만드는 책이다. <88만원 세대>에 대한 평가에 동의한다.

이승우 : 강명관 교수의 다른 연구들이 인상적이었다. 실학 담론에 대한 본격 문제 제기였는데, 학계에서 반응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김동춘 교수가 쓴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성찰>은 ‘기업 사회’ 문제를 다루었다. 그로부터 10개월 만에 삼성 문제가 터졌다. 한국 사회가 기업사회화하는 것을 예리하게 짚었다.
정철수 : 꼽는 책들이 겹친다. 저도 <88만원세대>이다.

- 꼽는 책들이 주로 국내 필자가 쓴 것이다. 그런데 2008년 출간 예정작 리스트를 보면 국내 필자가 쓴 책의 비중이 크지 않다. 개마고원이 참석한 다른 출판사에 비해 국내서 비중이 높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의덕 : 국내 기획서는 초안을 잡아서 청탁하고 책이 나오기까지 품이 많이 든다. 지난해 낸 책 가운데 한 권은 기획하고, 필자 찾고, 청탁하고, 출간까지 5년이 걸렸다. 청탁하고 나서 원고 펑크나고, 또다시 청탁하고. 필자가 서너 번 바뀌었다. 그런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교수들은 자기 논문을 묶어내면 폼도 나고 실적도 쌓인다. 전공서는 낸다. 그런데 인문 대중서는 기피한다. 쓰는 데 품이 많이 들어서다. 전공서를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그렇게 힘들게 써도 기껏 2000~3000부 나가는 상황이다. 그러니 책을 쓰려고 하겠는가? 그러다 보니 필자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지난해 국내 필자가 집필하는 시리즈 12권을 내기로 했는데, 딱 한 권 나왔다. 필자가 없어서다.

   
 
ⓒ시사IN 한향란
정철수 (이매진 대표)  “인문 출판의 위기가 매출의 감소도 있지만 책 만드는 사람들의 문제도 있다. 젊은 층이 독자층에서 사라지고, 더불어 편집자도 그 세대에서 배출되지 않고 있다. 최신 이론을 소화할 만한 젊은 편집자가 없다.”
 
 
정철수
: 올해 젊은 연구자들을 필자로 발굴하려는 것을 주요 방향으로 잡은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교수나 박사 이상 필자를 고집할 게 아니라 다양하게 찾아보려고 한다. 예를 들어 시민사회의 활동가들. 이게 잘되면, 국내 인문·사회과학 출판이 살 수 있는 활로가 되지 않을까.

장의덕 : 현장 활동가들, 워낙 바빠서… 출판사로서는 아주 괴롭다(일동 웃음).

유재건 : 국내서 비중이 낮은 것이 걱정할 문제일까 싶다.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칠 만한 책이면 굳이 국내서인지 번역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외국은 작가 인프라가 두터운 것이 사실이다. 한 사회가 갖는 힘이다.

- 올 한 해 인문·사회과학 출판계가 해결했으면 하는 과제가 있다면?

이승우 : 인문서는 그 책의 주제를 전공한 전공자가 번역하는 출판 문화가 필요하다. 이전에 비해 우리 사회에 인재 풀이 생겼다. 비전공자가 번역을 하는 경우, 번역이 엄밀하지 못하고 황당한 오역이 생긴다. 출판 편집자나 기획자가 번역자를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

장의덕 : 인력 구조 문제가 염려스럽다. 메이저 출판사가 인력을 키워서, 그들이 작은 출판사로 유입되어 활력이 되면 좋은데. 지금은 오히려 작은 출판사가 사람을 키우면 메이저 출판사들이 쏙쏙 빼간다. 임프린트 제도가 시행되면서 인력을 빨아들이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어 걱정스럽다.

유재건 : 시장에 휘둘리면 방향이 흔들리고, 그러면 독자가 떨어져나간다. 자기 방향을 명확히 설정해 흔들리지 않고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은 기획 예고제를 했으면 좋겠다. 독자들이 새 책을 기다리고, 출판사들도 서로 참조할 수도 있다. 큰 틀에서 독자와 저자를 더불어 키우지 않고, 자기만 살려고 하면 결국 그게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다.

진행·정리/노순동·차형석 기자


 

다양한 잡지 1

낯설지만 매력적인 잡지들

2008.12.05 / 온라인 편집부

인터넷이 전국을 지배하며 종이 잡지를 위협하는 이 시대에도 오프라인의 매력은 여전하다. 간단한 지식검색으로 알고 싶은 정보를 쉽게 알 수는 세상이 왔지만 진지하게 또 좀 더 전문적인 소양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여기, 여전히 낯설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잡지들을 소개한다. 영화, 문학, 사진, 디자인, 만화, 음악을 비롯한 각종 예술에 대한 담론과 개성 강한 이미지들이 색다른 감흥을 주는 잡지들이다. 그중에서 <필사>, <싱클레어>, <IANN>, <Sal>을 먼저 살펴보자.

영화에 관한 건강한 아마추어리즘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


키에슬롭스키의 영화 제목을 연상시키는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이하 <필사>)은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보고자 한다. 오해는 마시라. 그렇다고 마니아들끼리의 소통을 원치는 않는다. 그저 영화를 상품이 아닌 문화로 향유하는 세상을 꿈꿀 뿐이다.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소비’하고 영화 담론이라는 용어 자체가 무색해지고 있는 지금, <필사>는 기존 매체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이상적인 아마추어리즘을 견지한 비평과 리뷰, 인터뷰를 통해 영화 애호가들 사이에서 착실하게 인지도를 넓히고 있다.

영화가 좋고, 영화 글을 쓰고 싶어 자발적으로 모인 필진들은 오프라인을 고집하고, 시의성에 구애받지 않을 만큼의 강단도 갖췄다. 물론 강민영, 전민규 두 공동 편집장은 자신들의 첫 결과물이 나오는 내년 1월 이후에도 영화광들을 규합시켜주는 아트시네마 상영작들에 대한 옹호는 변함없으리라 다짐한다. 다만 좀 더 가독성을 높일 수 있도록 디자인도 바꾸고, B급영화를 비롯해 필진들의 다양성과 개성을 담보하는 글을 통해 독자들과의 접점을 넓혀갈 계획이다. <필사>의 앞날은 밝다. 심지어 그들은 모두 혈기왕성한 20대다. 하성태 기자 | 사진 공양식

공동 편집장 강민영, 전민규와의 3문 3답

창간은 언제? 작년 3월, 이도훈 전 편집장이 지인들을 모으고 자비를 들여 창간했다. 이후 하나 둘 필진들이 모여들면서 지금의 기틀을 마련하며 17호까지 발행했다. 5호 이후엔 잡지를 보고 프러포즈를 해온 KT&G상상마당의 지원을 받고 있다.

최고의 기사는? 올 시네마디지털서울에 출품된 6편의 영화 리뷰와 감독 인터뷰를 실은 16호 특집이다. 여타 매체라면 불가능했을 60쪽에 달하는 방대한 기획을 소화해냈다.

어디서 보나? 상상마당, 서울아트시네마, 미로스페이스, 하이퍼텍나다, 인디스페이스에 무료로 배포된다. 그리고 최근엔 부산아트시네마에서도 만날 수 있다

당신을 위해 비워둔 한 페이지 <sinclair>

<sinclair>는 편집장 김용진, 그룹 스웨터의 보컬 이아립 등으로 구성된 5명의 편집팀이 꾸려가는 준 문예지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등장하는 자의식 강한 소년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당신에게 한 페이지가 주어진다면’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했고, 일반 사람들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정서를 표현한 글, 사진, 비주얼 등을 담는 열린 공간이다. 나이, 국적, 직업을 불문한 300여 명의 필자군으로부터 기고를 받는데, 그중에는 방송작가, 60대 주부, 중학생 등도 포함된다.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원래의 취지처럼 모든 글은 편집장의 퇴고를 거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만화가 서나래, SF소설 전문 번역가 정소영처럼 문학이나 예술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20~30대의 인터뷰도 진행한다. <sinclair>는 이들을 ‘개인 작업자’라고 명명한다. 김용진 편집장은 앞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참여할 수 있는 친절한 <sinclair>가 되기를 꿈꾼다. 조숙현 기자 | 사진 공양식

김용진 편집장과의 3문 3답

창간은 언제? 인디 잡지 발행이 붐이었던 1999년 겨울에 기획해 2000년 3월 창간했다. 현재 격월로 발행한다.

최고의 기사는? 2000년 2호에 실린 중학교 2학년 학생의 에세이. ‘통일이 뭔가요?’라는 주제의 글이었다. 통일에 대한 개념을 독창적인 관점으로 접근한 순수한 글이었기에 기억에 남는다. 재미있는 것은 그 학생이 지금은 대학생이 돼 정치학을 공부한다는 것이다.

어디서 보나? 교보문고 광화문, 강남, 잠실, 분당점 및 교보문고 웹 사이트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다.

아시아의 눈으로 세계를 보다 <IANN>

<IANN>은 ‘보는 눈과 사고하는 눈(二眼)’을 뜻하는 말로 김정은 편집장이 영국에서 혼자 만드는 잡지다. 사진을 공부하면서 편집장 일까지 하고 있다. 예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어렵게만 느껴졌던 사진을 쉽게 소개하기 위해서다. 특히 <IANN>은 작가와 아트디렉터, 큐레이터가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매호마다 전시 테마와 같은 주제로 만들어진다. ‘Artist’s Project’ 세션은 잡지 쪽 이슈에 맞는 작품들을 작가가 직접 편집하거나 촬영을 제안하고, 큐레이터나 디렉터가 작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방식이 특징이다.

<IANN>이 추구하는 스타일이 이런 것이다. 또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강한 개성의 디자인과 콘텐츠도 신경 쓰고 있는 부분. 한국에서는 새로운 디자인이다. <IANN>은 인쇄품질과 콘텐츠의 독창성을 내세워 해외 잡지들과 경쟁하고 있다. 서양의 잡지들이 서양의 눈으로 아시아를 본다면, <IANN>은 아시아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김정은 IANN 편집장 | 정리 김도형 기자 | 사진 백지연

김정은 편집장과의 3문 3답

창간은 언제? 영국에서 사진 공부를 하다가 사진집과 같은 잡지를 만들고 싶었는데, 우연히 일본출판사 디렉터인 마사케주 다케이를 만나 2006년 겨울부터 준비해 2007년 12월 창간했다.

최고의 기사는? 첫 기사였던 요이치 나가노와의 인터뷰. 일반적인 정보가 아닌 전문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또 이를 통해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하는 편집장의 역할도 이해하게 됐다.

어디서 보나? 일반 대형 서점이나 웹 사이트(www.iannmagazine.com)에서 만날 수 있다. 또 홍대의 상상마당이나 여러 사진 갤러리에서도 접할 수 있다.

위험한 재미 <Sal>

살북은 어른들을 위한 만화 잡지다. 청소년층에 급속히 침범한 일본만화는 그 오락적인 면모를 통해 국내 만화 시장을 지극히 소비적으로 변질시켰다. 성인 만화라는 것도 청소년의 엿보기 심리를 자극하는 반쪽짜리 성인물에 그치는 현실. 살북 3호의 편집을 맡은 김성희 작가는 “청소년은 자신의 시선 밖의 것을 원하고 성인은 자신에게 맞는 것을 원한다”고 말한다. 현실 그대로의 먹먹함과 일상생활의 소소한 유쾌함이 공존하는 살북의 만화들은 각기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하나같이 성숙한 시선을 공유한다.

순간적인 재미를 위해 만들어지고 읽히자마자 사라지는 만화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요즘, 살북은 작가들과 독자들에게 모험을 제안하는지도 모르겠다. 살북 편집의 단 하나의 원칙. 작품에 대한 편집권은 누구에게도 없다는 점이다. 내용은 물론 페이지의 분량에 대해서도 어떠한 변형을 가하지 않는다. 안전한 형식을 갖춘 잡지가 되기보다는 작품 본연의 재미를 손상하지 않으려는 살북만의 고집이다. 김성희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재미라는 것은 위험을 수반한다”고. 유주하 기자 | 사진 박태근

3호 편집장 김성희 작가와의 3문 3답

창간은 언제? 서로 알고 지내던 9명의 작가들이 작품 발표 공간이 마땅치 않은 현실에 분개, ‘그럼 차라리 우리가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사비를 털어 2007년 3월 200부를 만들어 배포한 것이 시작이었다.

최고의 기사는? 3호에 새롭게 참여한 공사원 작가의 <겸손한 비스켓>이 인상적이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감수성이 뛰어나다.

어디서 보나? 살북 블로그와(http://blog.naver.com/salbook) 작가들의 개인 블로그를 통해 통신판매를 하고 있다. 이제는 홍대의 한양문고, 대학로 이음아트, 알라딘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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